자본시장 신뢰회복 위해 상법 개정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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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자본시장 신뢰회복 위해 상법 개정 미룰 수 없다 한화에어로 유상증자가 보여준 국내 지배구조의 취약점

기사입력2025-04-18 09:43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이후 뒷말이 무성하다. 국내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라는 점도 주목을 받았지만, 이번 유상증자가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화의 유상증자 계획은 역대 최대 규모임에도 사전에 주주들은 물론 임직원에게도 예고나 설명 없이 발표함으로써 주가가 급락하는 등 주주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3조6000억원이라는 규모의 유상증자 자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발표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유상증자의 당위성과 주주 소통 절차, 자금 사용 목적 등에서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기재가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증권신고서를 반려했다.

한화그룹은 이달 8일 이사회를 열고 일반주주 대상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줄이고, 한화에너지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1조3000억원 규모로 참여한다고 정정했지만,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앞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2월 한화에너지로부터 한화오션 주식 약 2237만주를 1조3000억원에 취득했다. 한화에너지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1조3000억원 규모로 참여할 경우 사실상 그룹내 지분 교환이 이뤄지는 것으로, 방산산업의 호조로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을 한화에너지가 소유하게 됨으로써 세 형제의 그룹 내 지배권이 강화되는 셈이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1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수정한 유상증자 계획에 대해 2차 보완을 요구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상증자로 확보할 2조3000억원 중 수천억 정도의 금액에 대한 자금사용 목적이 불명확하고,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 등 의혹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김종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한화 경영권승계 토론회에서 “한화에너지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참여는 2012년 에버랜드(제일모직)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을 연상시킨다”며, “향후 ㈜한화와 한화에너지가 합병할 경우 한화에너지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유 지분은 제일모직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보유 지분처럼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배하는 한화에너지가 한화그룹의 주요 성장동력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을 확보해 향후 한화그룹 전체 지배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가치가 큰 자산가치로 평가된 것처럼 재벌들이 그룹 전체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편법의 되풀이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유상증자가 아닌 한국 재벌기업의 지배구조와 자본시장의 공정성 문제를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한, 지배주주에 의한 일반주주의 이익침해 문제도 심각하게 봐야 할 문제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교수는 “별 고민없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회사가 증자를 통한 자본조달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주주에게 일정 정도의 수익률을 돌려주지 못해도 총수와 이사회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주주가치 희석, 주가의 하락 등 피해를 일반주주가 떠안으면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승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인데,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는 또다시 타격을 입게 됐다.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권리보호는 자본시장 신뢰를 지키는 핵심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 행사로 또다시 멈춰선 상법 개정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례는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