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란 대체 무엇인지, 그 정의와 한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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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윤리란 대체 무엇인지, 그 정의와 한계를 묻다 김홍석의 개인전 개막 퍼포먼스 ‘Post 1945’

기사입력2025-10-08 15:35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규범을 위반하고, 사유와 감각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비토 아콘치는 미술관 바닥에 누워 헐떡거리는 신음을 내뱉었고, 크리스 버든은 팔에 총을 맞았다. 오늘날, 이러한 위반의 역사는 물음을 끌어낸다. 미술이 너무 ‘착하게’ 변해버린 건 아닐까? 한계를 다시 시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위반의 정치학은 때로 모순적이다. 사회적 규범을 해체하기보다 강화하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이론’을 쓴 로렌 포니에는 애초에 위반을 허락받은 건 남성 예술가뿐 아니었을까 질문한 적 있다. 남성 예술가의 위반이 역사에 남아 신화화된다면, 여성 혹은 퀴어 예술가의 위반은 묵인된다. 어쩌면 예술로 남을 수 있는 것은 허락받은 위반일 뿐이다. 그러나 허락받은 위반이라니, 모순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지면에서 다루고 싶은 전시는 김홍석의 개인전 ‘In through the outdoor’(2008)다. 이 전시는 개막 직후 큰 화제를 모았다. 전시 자체보다는, 개막 퍼포먼스 ‘Post 1945’ 때문이었다. 작가는 갤러리에 소형 금고를 두고, 그 안에 지폐 다발을 놓았다. 그리곤 지금 이 갤러리에 성노동자가 초대되었으며, 전시 관람객에 뒤섞인 성노동자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이에게 현금 1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지했다. 전시 개막 후 1시간 30분가량 지난 뒤 갤러리 인턴이 성노동자를 지목했고, 퍼포먼스는 그렇게 끝났다.

In through the outdoor(2008) 전시 전경.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이를 통하여 미술이 점유하고 있는 권력 관계를 문제 삼는 것은 작가 김홍석의 수법 중 하나다. 김홍석은 ‘Post 1945’의 의도가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 정착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하고, 윤리란 대체 무엇인지, 그 정의와 한계를 질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누군가 성노동자를 지목하고 돈을 받을 때, 자본을 향한 욕망이 윤리를 벗어나는 순간이 연출된다. 또한 예술을 보여주는 갤러리에서 돈이 오가는 장면을 연출함으로, 미술 공간이 갖는 아비투스를 공격하려는 의도 또한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Post 1945’는 미술사 내에서 위반을 실천한 작업과 같은 맥락 아래 놓일 수 있다. ‘나쁜’ 예술은 얼마든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역시 산티아고 시에라일 테다. 시에라의 경우는 확실히 더 나쁘다.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의 몸에 영구적으로 남는 문신을 새겼기 때문이다. 클레어 비숍은 시에라의 작업이 파견 업체를 통해 외주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작가와 퍼포머 간의 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작업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자본주의적 소외를 작업을 통해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의 특징을 전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Post 1945’의 경우, 이와 같은 수법이 적절하게 나타났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Post 1945’에서 드러났던 건 미술이 갖는 권력 관계가 아니라, 성노동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이었으며, 성노동자와 갤러리 인턴을 퍼포먼스에 동원할 수 있는 작가의 권력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Post 1945’를 둘러싼 논의가 하나의 비평적 프로젝트로 남았다는 점이다. 미학 연구자 김주현은 자신이 활동하던 비평 공동체에서 ‘Post 1945’를 대상으로 한 비평과 그에 대한 응답을 전개했고, 이를 모아 책의 한 챕터로 엮었다. 여기서 여러 비평이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충돌했다. 예컨대, 오경미는 성노동자가 곧 자본주의의 모순을 상징한다고 전제한 작가의 인식을 비판했다. 자본주의적 관계 안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육체를 활용해 노동하기에, 이를 간과한 것은 작가의 자가당착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한편, 김선영은 오경미의 비평이 전체 전시에서 특정 부분만을 부각하는 오류를 갖는다고 보았다. ‘Post 1945’에서 중심이 되는 내용은 성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적 가치의 파괴이며, 퍼포먼스는 현실의 모방이기에 퍼포먼스에서 벌어진 일을 현실에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책의 형태로 남아 ‘Post 1945’가 어떠한 퍼포먼스였는지 남겼다.

퍼포먼스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휘발되기 쉽다는 점이다. 비평은 이러한 휘발성을 붙잡고 기록하여 흔적을 남긴다. 비평이 남긴 흔적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또 가닿는다. 여러 의미에서, ‘Post 1945’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소외와 모순이 아니라 비평이 갖는 힘을 강조한 사례가 된 듯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