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재생, 생성과 소멸…자연의 순환적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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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죽음과 재생, 생성과 소멸…자연의 순환적 질서 목탄으로 그린 달빛의 세계…이재삼 작가

기사입력2025-04-01 08:40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이재삼, ‘달빛녹취록 Vol.4’, 2022, 캔버스에 목탄, 194×1813cm. 전시 전경.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재삼 작가의 개인전 ‘달빛녹취록 2020-2024’전이 주목받고 있다. 오는 4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4년간 작업한 결과물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다. 20여 년간 달빛에 매료되어 밤의 풍경을 탐구해 온 그의 예술적 여정이 집약된 ‘달빛’ 연작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이재삼 작가는 목탄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활용해 자연과 인간, 빛과 어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재생,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대한 철학적·생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목탄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재삼 작가는 1998년부터 현재까지 목탄의 정밀성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숲에서 수확한 나무로 만든 목탄과 광목천을 사용해 캔버스를 직접 제작하고, 송진과 아교로 목탄 층을 고정하며, UV 코팅으로 내구성을 확보하는 등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했다.

작가에게 목탄은 단순한 미술재료가 아닌 숲의 영혼을 환생시키는 신성한 도구다. 그는 “나무는 목탄의 근원이고, 목탄은 나무의 변형된 형상이며, 숲의 육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숲의 영혼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의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수중월(水中月)’, ‘심중월(心中月)’, ‘검묵의 탄생’ 3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수중월’ 섹션에서는 물안개가 가득한 몽환적인 밤 풍경과 달빛과 어우러진 폭포를 묘사한 작품들을 통해 시간의 덧없음과 영속성이라는 대조적인 개념을 표현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달빛녹취록 Vol.5’로, 546cm×2270cm의 압도적인 규모로 제작되었다. 21개의 캔버스가 결합된 이 작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김제 종덕리의 왕버들나무를 모티브로 해,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심중월’ 섹션에서는 자연 속에서 생명과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달빛녹취록 Vol.2’는 전남 광양시 옥룡사지 터의 동백나무 숲을 그린 작품으로, 목탄의 섬세한 질감을 통해 은은한 달빛이 숲 전체를 감싸는 모습을 담아냈다.

‘검묵의 탄생’ 섹션에서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제작된 초기 목탄화, 인물화, 작가 자화상을 중심으로 작가의 예술적 뿌리와 발전과정을 조명한다. 특히 ‘저 너머’ 연작은 극사실주의적 기법이 돋보이는 인물화로, 작가의 섬세한 표현능력을 보여준다.

이재삼 작가는 강릉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박수근미술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해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 여러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2018년에는 제3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