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들…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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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아름다운 여인들…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뮤즈 예술가의 뮤즈 ⑪마르크 샤갈과 벨라 로젠필드

기사입력2017-10-27 14:53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러시아(현 벨라루스 공화국) 태생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생선을 팔았던 아버지와 채소장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형제 중 첫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모이셰 하츠켈레프 세갈(Moishe Hatskelev Shagal). 이후 ‘큰 걸음’이라는 뜻의 ‘샤갈(Chagall)’로 성을 바꾼다.

유대인 출신인 샤갈은 1907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있는 짜반체바 왕실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자연주의적 화풍의 그림을 그렸던 샤갈은 그곳에서 벨라 로젠필드(Bella Rosenfeld, 1895~1944)를 우연히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샤갈은 그의 자서전 ‘나의 삶’에서 “마치 그녀는 나의 어린시절과 부모님,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보석상을 운영했던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인 벨라 로젠필드는 샤갈보다 아홉살이나 어렸다. 그녀는 전국 3% 이내의 성적 우수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모스크바 게리에르(Guerrier) 여자대학교에 다니던 수재였다. 가난뱅이 집안의 청년 화가와 부유한 집안의 딸 사이 교제 사실은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입에 올리기 좋은 화젯거리였다.

1910년 샤갈은 파리로 유학을 떠나 쥘리앙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입체파 화풍에 영향을 받으며 피카소와 같은 작가들과 교류한다. 그의 작품들은 독일의 아트딜러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몇 번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The Birthday, 80.5x99.5cm, Oil on cardboard, 1915년<출처=Pinterest.com>

전시회가 끝난 1914년 러시아로 돌아온 샤갈은 벨라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부모를 찾아가 간신히 결혼허락을 받고 1915년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그해 세기의 결작 ‘생일’(The Birthday, 1915)을 발표한다. 도발적인 원색이 눈에 띄는 ‘The Birthday’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샤갈의 순수하고도 강렬한 기분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후에도 그는 사랑의 몸짓과 꽃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여인들’ 연작을 발표하는데, 이는 모두 자신에게 영감을 준 뮤즈인 벨라를 향한 헌정작이었다.

결혼 2년째 접어든 해인 1917년 러시아에서 발발한 10월 혁명은 샤갈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n) 화가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이 사회에 속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고 선언할 만큼 현실세계의 이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 이후 러시아를 떠나 베를린과 파리 등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하지만 그의 이런 태도는 주관적이고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의 형식에 집착하는 미술사조를 거부한 사상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후 샤갈은 입체파와 야수파의 작품들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며, 색채의 마술사라는 호평과 함께 1939년에 카네기 상을 수상한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 등의 나라를 망명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유지했다. 벨라는 그 와중에도 샤갈이 러시아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준다. 하지만 1944년 질병에 감염된 벨라는 전쟁 중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샤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샤갈은 인생의 위대한 뮤즈였던 벨라가 떠난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캔버스들을 모두 벽 쪽으로 돌려놓은 채 절필을 했을 정도로 극심한 상실감에 빠졌다. 벨라가 부재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샤갈은 다시 붓을 들고 프랑스의 지중해에 머물며, 특유한 몽환적인 분위기와 따뜻한 색채가 가득한 명작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