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장밋빛 환상…이제 음지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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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4차 산업’ 장밋빛 환상…이제 음지도 바라보자 노동소외·불평등 문제의식조차 없는 대통령 후보들 우려스럽다

기사입력2022-02-08 13:0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출근길 환승 전철역에 새로운 커피판매점이 들어섰다. 불이 커진 2~3평의 점포 안에는 점원이 한명도 없다. 밖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주문을 하고 카드 결제가 끝나면, 로봇 팔이 몇 번을 움직여 커피가 담긴 컵을 출구로 내민다. 어떤 대화도 필요 없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계의 언어로 소통하고, 노동은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로봇 팔이 담당한다. 편리한 세상이다. 신기해, 한참을 쳐다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커피를 맛있게 볶아 손님에게 내밀던 수많은 바리스타는 어떻게 살아가지?’

4차 산업의 발달 속도는 경이롭다. 설마 저런게 가능할까 상상하는 것들이 TV에 소개되고 얼마 안 있어 현실로 다가온다. 음식점에 로봇이 서빙을 하고, 관공서에는 현관 앞에서 로봇이 무슨 업무를 볼 것이냐고 질문을 던진다. 아파트의 경비초소에 사람 대신 감시카메라가 들어선 건 오래된 일이다. 대형마트에도 계산원의 일자리를 바코드 스캐너가 대신하고, 골목마다 자리한 무인점포에는 주인이 없어도 감시의 눈길은 더 촘촘하다. 인간의 노동은 그렇게 밀려난다. 안내 데스크를 지키던 사람도, 대형마트 계산원도 일자리를 잃는다. 아파트는 경비와 감시 업무를 위해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 기계가 하지 못한 분리수거나 청소를 위해 사람을 고용할 뿐이다.

바코드 기계화 시스템으로 마트 계산원에서 밀려난 노동자는 시작일 뿐이다. 자동화·기계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그늘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런데도 세상은 온통 4차 산업에 대한 환상으로 도배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에서는 4차 산업에 대한 장밋빛 환상만 있을 뿐, 음지에 대한 조명이나 관련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과학기술 5대 강국으로 도약 시키겠다는 이재명 후보, 4차 산업시대에 맞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윤석열 후보, 4차 산업시대의 적임자라는 안철수 후보.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노동소외 현상이나 이로 인해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그래서 문제의식조차 없는 게 아닌가 우려가 생길 정도다.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고 탄소중립 신기술 개발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 좋다. 신산업 규제를 풀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후보 공약이나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인재 50만명을 양성하는 안철수 후보 공약 또한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4차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린다 해도, 이 때문에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고학력자와 신기술 소유자들만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바코드 기계화 시스템으로 마트 계산원에서 밀려난 노동자는 시작일 뿐이다. 자동화·기계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게 4차 산업의 그늘이다.

세계 많은 국가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4차 산업을 지원하는 것,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또 4차 산업으로의 발 빠른 이전은 기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역할이 기업의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4차 산업으로 기업에 부가 집중되고 국민들의 소득불균형이 점점 커진다면, 산업혁명 시기 공장을 습격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만큼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플랫폼 시장의 급성장, 관련 기업은 돈방석에 앉았지만 노동자들은 격무와 과로에 내몰리고 시장잠식에 영세업체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4차 산업으로의 전환이 모두 이런 과정을 밟아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할 일은 빠르게 전환되는 4차 산업 시기, 노동소외와 불평등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을 지원해 몇 십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만큼 중요한 것이 4차 산업으로 실업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지켜낼까 하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