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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무시하고 ‘을’ 갈라치기 하는 정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제는 ‘인기투표’할 정책 아니다 

기사입력2022-08-01 12:36
이미현 객원 기자 (min@pspd.org) 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 이미현 팀장
도로를 주행하던 화물차에서 2000여개의 맥주병이 쏟아졌다. 사고 직후, 주변을 지나던 10여명의 시민들이 비를 맞아가며 정리를 도와준다. 30여분 만에 도로는 말끔히 정리됐고 시민들은 쿨하게 가던 길로 향한다. 해당 맥주업체가 이 영웅들을 찾겠다고 해당 CCTV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이 미담은 널리 알려졌다. 심지어 미국의 ABC 뉴스에도 영상이 소개되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댓글로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하고 이런 커뮤니티가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찬사를 보내는 상황이다. 이후 시민들의 제보로 찾아낸 영웅들이 당연한 일을 했다며 밝힌 겸손한 소감이 후속기사로 알려진다.

 

뉴스에서 이런 미담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고에 또 다른 영웅들이 나서 제 일처럼 도왔다는 기사가 이어진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남이 처한 어려움과 곤란에 공감하고 해결에 함께 나서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따뜻한 마음이 든다.

 

사회적 연대가 우리 사회에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다가도, 이런 높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못미치는 정부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제안 TOP10 투표 이야기다. 관련 홈페이지에는 도대체 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지, 10의 선정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책제안의 이유와 정책효과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반대 의사를 표출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도 1~3위에 오른 제안은 실제 정책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대상에 오른 정책에는 9900K-교통패스 도입, 전세계약 시 임대인 세금완납 증명 첨부 의무화,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같은 실생활에 긴밀한 정책들로, 이미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거나 그 긍정적 효과를 봤을 때 간단한 행정조치만으로 바로 시행해도 될 만한 것도 있다

 

반면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같은 우리사회를 갈라치고 취약한 노동자들과 중소상인들의 피해를 강요하는 정책도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최저임금 차등 적용' 은 인기투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론이 난 사안까지 인기투표 방식으로 반대의견이든 뭐든 다 밀어버리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최저임금 차등 적용' 은 인기투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두 제도는 오랜 시간의 공론 과정 끝에 우리 사회가 상생하며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러 제도화 된 정책들이다. 물론 반대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취지가 경제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국민적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이를 도입·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취지를 인정해 의무휴업 제도가 위헌이라며 대형마트 7곳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마트가 유통시장을 독과점할 개연성이 높다며 합헌 결정을 내리고,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전통시장이 상생해야 한다는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최저임금 제도개선 TF는 해외 사례를 들어 최저임금 차등적용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특정 산업에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임금을설정하기 위해 해당 정책을 도입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임금을주려 이 제도 적용을 논의하고 있어 최저임금제 취지에 맞지 않아 차등적용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정부도 동의한 바 있다.

 

이처럼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론이 난 사안까지 인기투표 방식으로 반대의견이든 뭐든 다 밀어버리겠다는 발상이라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과연 정책을 인기투표로 정하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인가?

 

정치는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열띤 토론과 다각도의 검토로 그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정책의 취지와 효과, 개선점을 놓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필요한 방향은 무엇인지 숙고하고 논의해야지, 인기투표만으로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면 왜 정부와 국회가 필요한가? 왜 정치가 해야 할 일을 국민 개개인에게 미루고 책임을 방기하는가? 국민 개인이 자신의 편리함과 사회적 연대,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은 아니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 사회의 소수를 보호하고, 단기간에 효과가 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한다.

 

결과에 따라 노동자와 중소상인의 생존권 등 기본권의 침해를 초래할 수 있는 정책들을 윤석열 정부가 사회적 토론과 합의 없이 투표 결과만 가지고 추진한다면, 대기업이나 특정 사용자단체들의 소원 수리를 하기 위해 국민들의 표결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 당사자들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추진하고, 국민을 나누어 차별하고 약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정책은 과감히 폐기하는 게 맞다. 시민을 갈라치고, 약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정책을 정부가 투표 결과라며 민심으로 포장해 추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인기투표라는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사회적 연대의식을 가진 국민들을 시험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사회경제1팀 이미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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