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지었는데 재벌총수라 벌주기 중단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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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죄지었는데 재벌총수라 벌주기 중단합니까”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할 결심’

기사입력2022-08-17 00:00

이지우 객원 기자 (jwlee@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이지우 간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서래(탕웨이)의 대사다. 이 영화를 본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굳이 지금 이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있다. 최근 경제사범들을 대거 사면한 윤석열 대통령과 그로 인해 사면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관계가 이 영화의 주인공 해준(박해일)과 서래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형사인 해준은 산에서 추락해 변사체로 발견된 남자의 아내이자 용의자인 서래에게 의심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된다. 서래의 사건을 포함, 해결하지 못한 사건 자료를 거실에 붙여두고 수시로 쳐다보는 해준은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해준은 취조실에서 고급 초밥을 사주며 서래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고, 서래 또한 유부남인 해준을 대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해준은 서래가 남편을 죽인 증거인 휴대폰을 바다에 빠뜨리라고 말하며 서래를 떠난다. 이후 두 번째 남편까지 사망해 또 다른 용의자가 되어 돌아온 서래는 해준에게 ‘당신의 미결사건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래가 해준이 자신을 찾지 못하게 바닷속으로 침잠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를 이끌었으나, 본인이 기소한 이재용 부회장을 본인이 사면해 주었다. 형사인 해준이 서래의 죄를 임의로 사해준 것과 겹쳐 보인다.

이미 작년에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해주었기에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은 자유의 몸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특정경제범죄법상 형 종료 후 5년 동안 범죄를 저지른 회사에 취업할 수 없는 취업제한 규정이 걸린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회삿돈 86억원을 횡령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해 삼성전자 경영에 관여하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해왔다.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당당하게 앉을 수 없는 것도 이 취업제한 규정 위반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재벌총수 사면 복권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죄를 용서해 준 표면적 이유는 ‘경제살리기’다. 서래의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 모두 참작되도록 하는 한 마디가 ‘사랑’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이 한 마디에 검사시절의 자신을 부정하는 ‘사면할 결심’을 했다고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죄를 임의로 사해주었다고 그 죄가 정말 없어지는 것일지는 미지수다. 영화에서 해준은 서래의 죄를 못본 척 해주고 나서 형사로서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라는 대사를 남긴다. 이재용 부회장을 열심히 수사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쯤 어떤 상태일까? 검사로서의 마음을 모두 잊고 ‘붕괴’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고, 국가원수로서 정말로 ‘붕괴’되어도 큰일이다. 어떻든 좋지 않은 결심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영화가 그리는 서래는 아름다운 한편으로 위험한 여성이다. 이재용 부회장 또한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경제를 살리러 온 구원자일지 모르지만, 삼성 무노조 경영 원칙과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문제 등 노동자에게는 가혹하고, 회사에는 횡령·불법합병 등으로 손해를 끼친 사람이다. 영화에서 해준의 부인의 남자친구가 등장함으로써 기혼자인 해준의 사랑은 어느 정도의 면죄부를 받지만, 그럼에도 직업윤리를 위반했다는 해준의 자책감은 영화의 분명한 한 축을 담당한다. 이제는 검사가 아닌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최근 언론 보도에서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100% 무인 반도체 공장을 설치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재용 부회장이 호락호락하게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다할지는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은 언젠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될까? 아니, 애초부터 로맨스가 아니어야 할 사람들이 부적절한 관계로 맺어졌으니 이러한 비유조차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장래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생각해서 이들의 관계가 국정농단과 같은 파국으로 흐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유치하지만 영화 대사 중 하나인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를 바꾼 질문을 던지고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재벌총수라고 벌주기를 중단합니까?”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이지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