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증거인멸, 엄중한 판결 내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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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현대중공업 증거인멸, 엄중한 판결 내려져야” 향후 재발되지 않도록 공정위 조사 ‘방해행위’ 형사처벌 준용을

기사입력2023-02-13 11:00

신동화 객원 기자 (hwa@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옛 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 회사는 2019년 분할돼 기존 회사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으로 변경됐고, 신설 분할회사는 ‘현대중공업㈜’으로 명명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4만8529건의 선박·해양플랜트 제조 위탁 시 작업 전 계약서를 교부하지 않았고, 1785건의 공사에 대해 원가보다 낮은 대금 지급을 결정했으며, 부품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일률적인 10% 단가 인하를 강요하면서 미협조 시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공정거래위원회, 2019.12.19., 한국조선해양㈜ 및 현대중공업㈜의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 제재).

이러한 문제는 비단 현대중공업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역시 거의 같은 사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 및 검찰 고발 조치를 받았다.

이렇게 대형 조선3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사와 제재 결정이 이뤄진 것은 그간 대형조선사의 일방적인 갑질을 참다못한 피해하청업체의 아우성과 공익적 차원에서 이를 지지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 등이 이어졌고, 이에 공정위가 직권조사에 나섰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조선 BIG3 중에서도 특히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에 대응해 조직적으로 전자·문서 자료를 교체·삭제·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고 조사를 방해했다. 비록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법인과 임직원들에게는 과태료 처분이 내려지긴 했지만, 이 정도 제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시민단체와 피해하청업체들은 이러한 행위를 자행한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을 형법상 ‘증거인멸죄’ 혐의로 고발했고, 2월14일 내일 1심 선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증거인멸은 하도급 갑질을 자인한 셈이다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공정위 조사 전 하도급 거래 관련 자료를 교체·삭제·폐기한 일은 오히려 그간 현대중공업과 하도급업체 간 거래가 불공정했고, 법률적 문제가 있었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기에 떳떳했다면 이러한 행위를 무리하게 진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현대중공업은 2019년 이후에도 기술유용, 대금 미지급, 계약서 미발급 등 사유로 수차례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보통 하도급업체들은 거래단절을 우려해 웬만큼 부당한 일을 겪지 않으면 이를 공론화하기 꺼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하도급법을 위반하거나 불공정한 거래·작업 방식은 훨씬 광범위하게 자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3사가 2010년대 초반에 찾아온 조선업계 불황에 대응해 열악한 거래지위에 있는 하도급 파트너에게 손실을 전가했던 사실들,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소환될 정도로 심각하게 불거진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산업분야를 막론하고 산업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한 대기업이 존경받는 기업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는 현실을 다시금 재확인할 뿐이었다.

하도급법에 따르면 ‘선시공 후계약’,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등은 형사처벌 사항이므로 그 증거를 없애는 것 역시 형사처벌 사항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형법은 타인(법인)의 형사사건 관한 증거를 인멸한 행위를 ‘증거인멸’로 보고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필자가 확인한 바, 현대중공업의 갑질에 희생된 하도급업체 중 다수가 도산하는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 인건비마저도 지급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업체 역시 부지기수였다. 하도급업체들이 작업 전 계약한대로 정당하게 대금을 지급받고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한국의 주요 산업인 조선산업 현장이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현재 한국조선해양이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그룹사와 협력사를 포함한 산업생태계 전체의 동반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약속과 대비되는 실상, 재계서열 9위이자 세계 최고의 조선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대기업이 이렇듯 야만적이고 착취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해 온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불공정거래 기록 삭제, 증거인멸죄가 적용돼야 하는 이유

이렇듯 손실과 위험을 외주화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하도급업체의 고혈을 쥐어짠 현대중공업에 대해 경쟁당국이 조사에 나서고 제재를 결정한 일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 역시 이를 계기로 그동안의 경제적 거래지위 남용에 대해 반성하고 스스로 시정해나가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선택은 위법 사실을 은폐하고 조선산업 현장에 만연한 불공정거래 관행·구조를 지속하고자 하는 길이었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행위에 대한 ‘증거인멸죄’를 다루는 재판에서도 그 사실 여부는 이 재판에서 다루는 사항이 아니며, 하도급법상 자료은닉행위는 과태료 부가대상일 뿐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하도급법에 따르면 ‘선시공 후계약’,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등은 형사처벌 사항이므로 그 증거를 없애는 것 역시 형사처벌 사항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형법은 타인(법인)의 형사사건 관한 증거를 인멸한 행위를 ‘증거인멸’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14일 있을 ‘현대중공업 임직원의 하도급법·파견법 위반 증거인멸교사혐의 사건 재판’ 선고 결과가 하도급법을 위반해 갑질을 자행하고도 이를 어물쩍해버리려는 재벌 대기업에게 엄중한 법의 심판을 내리고 일벌백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번 재판은 그 선고 결정에 따라 불공정거래와 갑질 발생을 감독·예방하기 위한 경쟁당국의 역할을 축소할 수도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번 재판과는 별개로 향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위 조사 방해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공정거래법 규정이 준용되도록 하도급법을 개정하고, 갑질 피해를 입은 하청기업 구제를 위한 제도개선 및 조치 역시 시급하다. 법원뿐만 아니라 국회와 정부 역시 할 일이 많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