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경쟁·지속불가능 투자…‘콘솔리데이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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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과잉경쟁·지속불가능 투자…‘콘솔리데이션’ 답 동일업종 통합 시너지 구조 필요…“사모펀드가 딜의 주역이 될 것”

기사입력2025-06-09 12:03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국처럼 작은 시장에서, 같은 산업의 스타트업이 100개씩 경쟁하는 구조는 비정상입니다. 브랜드를 지키겠다는 자존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업을 살릴 해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정도영 삼정KPMG 재무자문본부 상무는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 딜사이트가 최근 개최한 ‘한국 벤처금융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벤처생태계를 둘러싼 위기 상황을 소개하면서, 기술력·인재·자금이 분산되다 보니 모두가 고사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고 진단하고, 동일 업종 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 구조조정 본격화…“사모펀드가 딜의 주역이 될 것”

정 상무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시장의 ‘과잉 경쟁’과 ‘지속 불가능한 분산 투자’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 해결의 열쇠로 ‘콘솔리데이션(Consolidation, 통합·합병)’을 강조했다. “한국 시장은 인구도 줄고, 마켓 자체가 작다. 이런 환경에서 동종 기업들이 너무 많다. 이제는 서로 경쟁하기보다 힘을 합쳐야 할 때”라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특히 그는 국내 주요 대기업 30곳의 향후 전략을 분석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이 가운데 27곳이 ‘구조조정’과 ‘셀 포지션(매각 준비상태)’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국내 500대 기업의 M&A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주요 대기업은 비핵심 사업부를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상무는 “이 매물들은 향후 3년간 시장에 대거 유입될 예정이고, 이 딜을 흡수할 주체는 PEF(Private Equity Fund, 사모투자펀드)가 될 것”이라며, “대기업 주도의 시장이 끝나고, 앞으로는 PEF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의 투자 대기자금은 40조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내 스타트업 엑시트의 약 95%는 ‘IPO가 아닌 M&A’

과거 벤처 생태계의 주요 엑시트 수단이었던 IPO(기업공개)는 현재 더 이상 실효성 있는 수단이 아니라고도 진단했다. 실제 2024년 코스닥 상장 기업 수는 2021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으며, 청약 경쟁률 역시 급감한 상태다.

사모펀드가 국내 엑시트 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IPO가 벤처투자의 주요 회수 수단이었지만, 최근에는 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와 같은 대형 사모펀드가 성장성 높은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기업 분할·재편을 통해 매각 수익을 실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 상무는 “지금 대기업들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있고, 그 자산을 받는 주체는 사모펀드”라며, “과거에는 VC(벤처캐피털)가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면, 앞으로는 사모펀드가 직접 벤처기업을 키워 수익을 실현하는 구조로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정KPMG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미국 내 스타트업 엑시트의 약 95%는 IPO가 아닌 M&A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약 61%가 M&A 방식으로 투자금 회수를 하고 있다. 정 상무는 “한국도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지금처럼 상장만을 목표로 하는 방식으로는 투자자도, 창업자도 모두가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기이코노미

활성화되지 못한 M&A…“합병 문화, VC 역할, 실패 두려움”

정 상무는 국내 M&A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합병에 대한 경영진의 부담 ▲VC의 낮은 의사결정 권한 ▲문화적·정서적 장벽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등을 꼽았다.

그는 “기업 CEO 대부분이 ‘내 브랜드는 내가 키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인수 제안이 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지금 같은 저성장 환경에서는 브랜드가 아니라 생존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내 VC의 권한 구조상, 포트폴리오사 간 전략적 합병을 유도할 수 없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투자심사역의 성과가 개별투자 건 단위로 측정되다 보니, 통합을 유도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정 상무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우버이츠(Uber Eats)의 M&A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해외시장에서는 지분 교환을 통한 전략적 합병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생존력을 높이고 있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우버이츠의 포스트메이트(Postmates) 인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벌어진 미국 배달시장의 구조 재편을 상징하는 M&A 사례다. 당시 미국내 배달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던 우버이츠는 4위인 포스트메이트를 약 3조원에 인수하며,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30% 이상 확대했다. 우버는 포스트메이트의 배달인력과 레스토랑 제휴망을 통합해 운영 효율성을 높여 서비스 커버리지를 넓히고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