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남마저 하나의 새로운 기법이 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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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어긋남마저 하나의 새로운 기법이 될 수 있을 것 실수를 했기에 가능했던 발견…실수 혹은 새로움

기사입력2025-06-16 14:54

박선호 미술작가 (sunhopark.info@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예기치 않게 워크숍 시간에 늦었다. 주말 교통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지도 앱을 확인했을 땐 30분은 일찍 도착할 거라 예상했는데 30분이나 늦고야 말았다. ‘조금 있으면 버스가 오겠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지’하며 안심한 탓이었다. 몇 주 전부터 캘린더에 일정을 등록하고 손꼽아 기다려 온 시간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날은 비도 정말 많이 와서 소지품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다. ‘정시에 도착하자’는 마음을 내려놓자 버스가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축축해진 몸으로 어찌저찌 워크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둘러앉은 테이블에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 낯선 이들이었다.

2023년부터 필름을 이용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자체로 설렜지만, 이제는 어떤 의도로 하나의 작업으로 엮어낼 구체적인 의도를 고민하는 시점에 와 있다. 초창기에는 비교적 휴대하기 쉽고 기동력이 좋은 super 8mm 카메라를 가지고 어딘가를 떠돌거나, 사소하고 사적인 순간들 담아보려 했다. 필름 작업을 하다 보니 필름 포맷에 따라 의도와 감각이 다르게 전달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양한 작업을 참조하며 공부 중이다. 이번 워크숍은 내가 다뤄 왔던 super 8mm보다 약 두 배 크기인 16mm 필름을 가지고 영상을 촬영 해보는 시간이었다.

super 8mm 필름은 내 새끼손톱만 한 크기다. 이렇게 작은 필름에 맺힌 상을 영사하거나 디지털로 변환해 영상 파일로 만든다. 기술 발전 덕에 훌륭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지의 물리적 조건이나 물성이 주는 감각적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16mm필름은 내 엄지손톱만 한 크기다. super 8mm에 비해 인식할 수 있는 디테일이 많다. 대체로 다른 작가들이 만든 영상을 통해 결과물을 접했었는데, 선명하고 깊은 이미지와 풍부한 계조를 담은 필름 그레인(film grain)이 인상적이었다.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경계되기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매혹이라면 쉽게 다룰 수 없는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박선호, 문철, 이기백>

워크숍은 촬영 이론에 대한 강의와 실습으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카메라를 접했고, 각각의 카메라의 특징이나 필름을 장착할 때 주의할 점, 필름의 종류에 따라 설정해야 할 옵션, 전자식 카메라와의 차이점 등을 배웠다. 이후 몇 명씩 짝을 지어 야외 촬영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라 무엇을 찍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차를 타고 근처 박물관으로 향해 돌과 나무를 촬영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꽤 무거웠기에 세 명이 역할을 나누었다. 한 사람이 촬영을 맡으면 다른 한 사람은 우산을 씌워주고, 또 다른 한 명은 노출계를 이용해 적정 노출을 측정해 주는 방식이었다. 무거운 카메라와 자꾸 눈을 가리는 빗물 속에서의 촬영은 마치 수상 스포츠처럼 느껴졌다.

촬영을 마친 후에는 필름을 현상하고 말린 뒤 영사기를 통해 상연했다. 보았던 것들이 기록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한 롤의 필름을 세 명이 나눠 찍었기 때문에 각자 촬영한 분량을 스플라이서(splicer)를 이용해 자르고, 편집용 테이프를 이용해 이어 붙이는 손 편집 과정을 거쳤다. 우리가 사용했던 필름은 ‘더블 8(double 8)’이라는 포맷으로, 이미지를 뒤집지 않고 정확하게 이어 붙이기 위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촬영한 장면 중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거나, 순서를 바꿔 보기도 하며 손끝의 물리적인 감각을 통해 하나의 필름을 엮어 갔다.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때는 손쉬운 작업이 실물 필름을 다룰 때에는 무척 번거롭게 느껴졌다. ‘혹시 필름을 잘못 이어 붙인 거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함께였다.

손 편집을 마친 후 영사 시간을 다시 가졌다. 편집된 필름이 상영되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막상 큰 화면에 영상은 반으로 갈린 채 보였다. 필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프레임이 어긋났다. 촬영본이 꽤 괜찮고 맘에 들었던 터라 잠시 당황했고,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약 일주일이 지난 이후 디지털로 변환된 영상을 받아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영상을 여러번 돌려보다 보니 그 어긋남마저 하나의 새로운 기법이 될 수 있을거라 느껴졌다. 실수를 해버렸기에 가능했던 발견. 의도했다면 분명히 찾아낼 수 없었을 일. 나에게 한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어떤 시간과 감각을 되돌려준 순간이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