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ESG 공시’…또 미룬다고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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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현실이 된 ‘ESG 공시’…또 미룬다고 될 일인가 한차례 연기했고, 수출 타격 우려…공시 의무화에 앞선 대처 필요

기사입력2024-06-18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기업 절반 이상, “ESG 공시는 2028년 이후가 적정”>

대한상의가 17일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ESG 공시를 대기업에 한해 의무화하는 조치를 현재 예정된 2026년 이후보다 더 늦게 시행하자는 의견들이 다수인 것을 알 수 있다. 기업들의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면 그 자체로도 곤란한 일이다. 미국과 EU의 ESG 규제가 이미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ESG 공시와 같은 대응을 더 뒤로 미루는 식으로 접근하다가는 당장의 수출에도 문제가 생길 우려가 커진다. 수출제조업이 나라 경제의 기틀인 한국이, 미국과 EU 등의 ESG 규제를 앞서가기는커녕 뒤따라가지도 못해서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5월 중순 사이 대한상의와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가 공동으로 자산 2조원 이상 12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 관련 기업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ESG 공시 의무화의 도입 시기에 대해 2028년 이후(2028~2030년)가 돼야 한다는 기업이 5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18.4%)과 2027년(23.2%)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공시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았다. 종속회사까지 포함해 연결기준으로 공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33.6%에 이르고,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59.2%에 달했다.

그러나 ESG 공시 의무화에 대해 시일을 늦추자는 대기업들의 의견은 현실적이지 않다. ESG 공시 의무화는 이미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당초 금융당국은 세계적인 논의에 발맞춰 대기업을 대상으로 2025년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화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로 2026년 이후 도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대기업 ESG 공시 의무를 2028년 이후에 도입한다면 이미 한차례 연기된 일정보다도 2년 이상 더 뒤로 미뤄야 한다. 세계적으로 ESG 공시가 의무화되는 추세에 발맞춰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한국만 ESG 공시를 2028년까지 미루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앞서 도입해 미리 적응을 하는 편이 주요국 수출이나 현지 규제 적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ESG 공시보다 더 강력한 규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EU는 지난해 10월부터 EU로 수입되는 6개 품목 제품에 대해 탄소배출 보고 의무룰 부과하고 있다. 2026년부터는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도 치러야 한다. EU 역내 생산제품이 탄소배출권 가격을 지불하고 있으니, 역외에서 수입된 제품들도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공급망 실사지침도 확정했다. 공급망 전체의 인권과 환경 요소에 대해 실사하고 문제점을 없애야 한다는 내용인데, 대기업을 기준으로 EU 역내와 역외 기업에 2027년부터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를 부여한다. 공시 의무는 대기업에 있지만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때문에, EU에 수출하는 모든 기업들이 실사의 대상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자체는 모두가 발벗고 나서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데 이견은 없을 터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여기에 주요국 수출이라는 생존이 걸린 문제도 겹친다. 결국 ESG 경영을 말로만 강조할 때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공시를 통해 알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 시대가 이러니만큼 대기업 대상 ESG 의무화를 뒤로 미루자는 의견은 현실성이 없다.

국내에서도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대기업들의 ESG 대응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한지 오래다. 대응을 뒤로 미루다 시장을 잃어버릴지, 앞서 나가 새로운 시장을 발굴할지 국내 대기업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