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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원인 뒤로한 채 예능·드라마 탓하는가

근로시간 단축, 수도권 집중완화, 주택가격 안정 등 할일 팽개치고 

기사입력2023-12-07 00:00
“방송사 프로그램 편성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온통 나혼자 산다, 불륜, 사생아, 가정 파괴 등의 드라마가 너무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이제라도 좀 더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좀 많이 개발하셔서 이런 사회 분위기 조성에도 방송사도 기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서정숙 국회의원은, 올해 3분기 들어 합계출산율이 0.7까지 떨어진데 대해 “1년 전보다 0.1명이 줄어든 역대 최저치로서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서정숙 의원은 “정부가 부모 급여, 돌봄 서비스, 신혼부부 주거 지원 등 각종 저출산 대책을 열심히 또 성의 있게 내놓고 있지만, 결혼과 출산에 대한 파격적인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 한 지금의 초저출산 상황을 타개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뒤이어서 “발목 잡기식 일부 정치인들의 꼴불견”과 방송사 프로그램에 책임을 돌렸다. 

미디어의 책임이 전혀 없지는 않을 터다. 일부 프로그램은 스스로 취지를 돌아보고, 연출 방향에 대해 재고할 필요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서 미디어 책임론만 거론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인식이 여당 소속 국회의원 한명의 시각도 아니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저출산 인식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질문 중 ‘미디어가 결혼, 출산에 미치는 영향’이란 항목이 있었고, 여기에 응답자의 80.9%(매우 48.9%, 약간 32.0%)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질문을 한 사실 자체를 통해, 저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가 미디어의 책임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인식조사 결과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다수 담겼다는 점이다. 가장 효과가 높을 것으로 생각되는 해결 방안으로 ‘육아휴직, 근로시간 단축 등 일·육아 병행제도 확대’라는 응답이 25.3%로 가장 높았다. 또 ‘수도권 집중 현상 해결’에 대해 86.5%(매우 55.4% + 대체로 31.1%)의 응답자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연구도 이뤄져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 실린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연구는, 육아휴직 등 각종 제도를 “실질적으로는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GDP 대비 가족 관련 지출이 OECD 중 최하위권인 점 역시 해결과제로 꼽았다. 

이 밖에 수도권 집중현상 완화, 주택가격 안정화, 중소기업 일자리 등 2차 노동시장 근무여건 개선 등 중요한 과제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하나같이 중장기적이고 구조개혁을 동반하는 과제여서, 정부와 정치권이 큰 그림을 그리고 폭 넓은 합의와 과감한 추진력을 통해 이뤄내야 할 과제들이다. 

거시경제 운용과 국가 균형발전 전략, 노동정책 등 전분야에서 저출산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구조개혁에 나서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심지어 정책방향이 정반대로 가서는 문제 해결이 더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현실을 보면, 주택가격 안정화와 연관이 있는 가계부채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수도권 집중현상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는 공약은 선거용으로 남발되고 있다. 육아휴직은커녕 연차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허다한데, 근로시간을 줄이는 정책은 보이지 않고 연장근로 상한선을 허무는 제도 도입만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정책의 방향을 저출산 해결과 정반대로 잡고 있으니, 정부와 정치권이 저출산 문제의 진정한 해결보다 책임회피에 더 관심이 큰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단편적인 장면이나 콘셉트 한두가지를 트집잡아 저출산의 중대한 원인인양 과장하는 행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두 번 되짚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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