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 저평가는 성장동력 부재에서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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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한국 시장 저평가는 성장동력 부재에서 비롯” 밸류업 핵심 PBR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기사입력2025-05-22 13: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정부가 강조하는 밸류업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PBR(주가순자산비율) 개선만으로는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자본시장 활성화와 금융안정 컨퍼런스’에서, PBR은 ‘현재까지 쌓인 자산 대비 미래 성장 기대’를 나타내는 비율로, 단순히 PBR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저평가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PBR이 낮다는 것은 오히려 시장이 해당 기업의 성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밸류업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마트를 언급했다. 2024년 3월 기준 이마트의 PBR은 0.2배 수준이었다. 투자자들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마트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해 주식을 대거 매수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하락해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졌다. 최 교수는 “이마트는 과거에 비해 자산은 많지만, 시장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며, “PBR이 낮다고 해서 주가가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레거시 산업 중심 구조…한계”=최 교수는 한국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제조업 기반, 특히 레거시(legacy) 산업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저성장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레거시 기업이란 보통 제조업, 중공업, 석유화학, 유통 등 전통적인 산업 기반의 기업을 의미한다. 포스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제조부문), 이마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기업은 성장성은 낮지만 자산은 많고, 고정비가 크며, PER도 낮은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PBR 차이에 대해서도 그는 “단순한 실적 차이가 아니라 기업 구조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은 R&D 중심의 경량 기업인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막대한 고정자산을 필요로 하는 중후장대형 제조업체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 시장의 낮은 PBR은 성장 동력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주 투자 열풍이 지속되면서, 가치주 위주의 한국 시장은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있으며,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해서는 혁신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밸류업…성장동력 회복이 먼저=최근 정부는 상법 개정과 주주환원 강화 등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환원이 반드시 PBR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저성장 기업들이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개최한 ‘자본시장 활성화와 금융안정 컨퍼런스’. ©중기이코노미

그에 따르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엔비디아는 배당보다는 미래 성장을 위한 재투자를 택한다. 자본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보다 내부 투자를 통한 성장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다. 투자자들 역시 이런 전략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성장 여력이 큰 기업일수록 현금을 내부에 재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주주환원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우량 기업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실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시장이 미래에 대한 기대가 낮다고 판단하면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며, “밸류업의 핵심은 지배구조가 아니라 성장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밸류업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디스카운트 해소를 넘어,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 내 조정기능 활성화 필요=또한 최 교수는 밸류업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대적 M&A, 상장폐지, 공매도 등 ‘시장 내 조정 기능’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자본시장은 펀더멘털(Fundamental, 기초체력)과 주가 간 괴리를 자동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약하다”며, “이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비트라지(arbitrage, 차익거래) 기능이 복원돼야 한다”고 했다.

아비트라지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자산이 서로 다른 시장에서 가격 차이가 발생할 때, 그 차익을 활용해 동시에 사고팔아 무위험 수익을 얻는 거래방식을 의미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대적 M&A, 상장폐지, 구조조정 등의 장치가 부족해, 가격 왜곡이 발생해도 시장이 자동으로 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개선은 정의와 분배의 차원에서 분명히 필요하다”면서도, “자본시장의 활력 회복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장 동력의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