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늘리고 임금 줄이면…입법취지 훼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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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정년 늘리고 임금 줄이면…입법취지 훼손 논란 KT와 전자기술원 임금피크제…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정당성 판결

기사입력2023-03-09 00:00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ㅣ다른기사보기

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최근 법원은 노사가 합의한 KT의 임금피크제에 관해 그 효력을 인정하는 판결(서울고법 2022나2025057, 선고일자 2023.1.18.)을 내렸다. 지난해 대법원이 한국전자기술원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효력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 것과 대조적이다.

임금피크제의 내용을 보면, 한국전자기술원은 기존 정년을 유지하며, 정년 전 일정 기간 임금을 감액하는 형태다. 반면 KT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고, 이에 따라 일정 기간 임금을 감액하는 형태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사건의 경위=피고는 국내 굴지의 통신기업 KT로, 2014년 4월8일 피고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과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등의 구체적 시행방안에 관해 노사합의를 했다. 합의의 주된 내용은 2016년 1월1일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되, 업무량과 업무강도 등을 줄이지 않고 1958년생부터 만 56세부터 4년간 연 임금액의 100%를 삭감하기로 합의했다(만 56세에 10%, 만 57세에 20%, 만 58세에 30%, 만 59세 40%).

피고와 임금피크제에 합의한 노동조합의 규약에는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피고 KT에 재직 중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감액당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2014년 4월8일자 KT 노사 간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KT의 임금피크제 시행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임금피크 대상 근로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위법·무효”라 주장했다.

또한, 원고들은 이 사건 임금피크제 도입 근거가 된 노사합의가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으로 노동조합 위원장이 조합원들이 아닌 피고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대표권을 남용하여 현저히 합리성을 결한 것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원고들은 피고 KT를 상대로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따라 원고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삭감된 임금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것(미지급 임금 청구)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피고 KT가 위법 무효인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의해 원고들에 대한 임금 지급의무를 면하고 이득을 얻은 동시에 원고들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부당이득반환(주위적 청구)을 청구함과 동시에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예비적 청구).

◇사건의 쟁점=이 사건의 쟁점은 먼저 KT 노동조합 규약상 단체협약 체결 시 조합원 총회를 거치도록 정하고 있는 규약에도 불구하고 총회를 거치지 않은 단체협약의 효력 문제다. 이는 자연스레 이 사건 노사합의가 대표권 남용행위에 해당해 무효인지 여부에 대한 쟁점과도 연결된다.

다음으로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이며, 이를 도입한 이 사건 노사합의가 단체협약의 성질에서 벗어나 무효인지 여부다.

◇법원의 판단=법원은 이러한 쟁점에 대해, 노조 대표자가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정한 규약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이는 조합원에 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하기는 하나,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 그 효력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은 KT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하여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조합원에게 미치게 될 경우 이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보호하는 조합원의 단결권 또는 노조의 의사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여 불법행위가 된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대법원 2018.7.26. 선고 2016다205908 판결 참조)을 내렸다.

임금피크제와 연동된 정년연장으로 임금 총액의 측면에서 불이익이 아니라고 보는 판단이 정년연장 입법 취지에 정합한 판결인지 논란이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앞서 대법원의 판례를 존중하면서도, 협약 자치의 원칙상 노조가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노조의 목적을 벗어난 것이 아닌 이상 사용자와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한 대법원의 2014년 판결(대법원 2014.9.4. 선고 2012다35309 판결 등 참조)과, 단체협약안 내용을 사용자 측과 합의 후 다시 협약안의 가부에 관하여 조합원 총회의 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고 정한 규정이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 권한의 전면적 포괄적 제한에 해당하여 노조법 제29조 제1항에 반한다는 취지로 판결한 2005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5.3.11. 선고 2003다27429 판결 법리 참조)을 근거로, 노조 대표자가 노조를 대표해 체결한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긍정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인 판단에서 임금피크제에 관해 노사합의한 노조 대표자가 이후 2014년 11월에 시행된 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71.47%의 득표율로 위원장에 당선된 점을 들어 노조원들이 2014년 4월8일자 노사합의를 사실상 추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 뿐만 아니라 KT 노사가 2014년 12월23일~2015년 2월24일까지 6차례 협의를 개최해 임금피크제의 적용연령과 감액률, 시행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 협의해 기존 회사가 제시한 140%의 감액률을 100%까지 노조가 조정했던 점등을 고려해 이 사건 노사합의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또한,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하며 이를 도입한 이 사건 노사합의는 단체협약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 무효라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며 임금체계 개편조치 의무를 고령자고용법 개안의 취지를 근거로, 정년연장에 따른 사업주의 재정적 부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신규채용 감축 등의 반작용 방지를 위해 임금체계 개편(임금피크제)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도록 규정한 고령자고용법 제19조의2가 사업주뿐만 아닌 노동조합의 의무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령자고용법 제19조의2를 마련한 입법자의 의도가 정년연장에 따른 사업주 부담 경감의 취지에서 신설된 조항인 만큼 임금의 조정, 즉 삭감까지 예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노사 간 임금 감액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의 경영상태와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에 있어서도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노사합의 효력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동종업계 SK텔레콤(12.9년)이나 LG유플러스(7.1년)보다 피고 회사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18.3년)가 월등하게 높은 점 등을 이유로 정년연장으로 인한 추가 부담이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들보다 더 큰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임금피크제와 연동된 정년연장으로 임금 총액의 측면에서 근로자들이 더 많은 액수를 지급받게 되어 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인해 적극적 손해를 입게 되었다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긍정했다.

◇판결의 의의=2016년 1월1일 개정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연령법)의 시행으로 법적 정년은 55세에서 60세로 늘어났다. 국민의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이 늦어지는 시점에서 국민연금 수급연령 전까지 생계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정년연장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늘어나는 정년으로 인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을 비롯해 호봉제를 시행하는 기업들로서는 늘어나는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 때문에 개정 연령법은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동시에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에 노사는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의무조항(제19조의2)으로 뒀다. 해당 조항은 임금피크제의 법적 근거가 됐다.

이번 판결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시행에 있어 그 정당성 요건을 앞선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기업의 경영상태 및 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 정도 등에 비춰 살펴본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으로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임금 총액에서 불이익이 아니라고 보는 판단이 정년연장 입법의 취지에 정합한 판결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해당 기업 직원들의 근속연수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을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시행의 정당성을 판단한다면,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